아레시보 (Arecibo)
아레시보는 '코레아 대위의 비야' (La Villa del Capitán Correa, 라비야델카피탄코레아)란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스페인군의 대위이자 푸에르토리코의 영웅인 안토니오 데 로스 레예스 코레아의 이름을 딴 것으로, 해군소장 윌리엄 웨트스톤이 이끄는 영국 해군이 습격해 오자 물리친 인물이다. 또 '북쪽의 다이아몬드' (El Diamante Del Norte), '아레시보 해안' (La Ribera del Arecibo)이라고도 부른다.
이 도시를 대표하는 것으로는 2016년 6월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전파망원경이었던 아레시보 천문대가 있다. 또 가톨릭교의 아레시보 교구가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스페인이 푸에르토리코에 처음 발을 내딛었을 때 원주민인 타이노족들이 사는 지역을 발견하였다. 타이노족의 족장인 자마이카 아라시보 (Xamaica Arasibo)는 카시케로서 유카예케 를 다스리고 있었는데 이때 당시 이름은 아바코아 (Abacoa)였다.
스페인 주민들은 1556년에 이곳에 와서 정착하였고, 마을 이름은 이 지역을 다스리던 카시케의 이름 '아라시보'에서 따온 '아레시보' (Arecibo)라 붙였다. 카파라 (지금의 산후안), 산게르만에 이어 푸에르토리코에 세워진 세번째 정착 마을이었다. 1616년 5월 1일에는 스페인 국왕으로부터 공식저으로 도시 지위를 부여받았으며, 펠리페 데 보몽 이 나바라 대위가 총독이 되어 다스렸다. 여기서 별명인 '코레아 대위의 마을' (La Villa del Capitan Corre)라는 말이 나왔다.
한때 푸에르토리코는 다른 유럽 열강들의 침공을 받기도 했다. 1702년 8월 5일 스페인군의 안토니오 데 로스 레예스 코레아 대위는 윌리엄 웨트스톤 수장이 이끄는 영국 해군이 아레시보를 침공해 오자 방어에 나섰다. 두 대의 군함과 군인 400여명을 앞세운 웨트스톤은 아레시보를 점령하려 하였으나, 코레아 대위는 군대를 매복시켜 기다리다가 습격에 나서 영국군 22명을 사살하고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 스페인군의 피해는 전사자 1명, 부상자 3명에 불과했다.
1778년에는 왕실 칙령에 따라 '비야' (Villa) 지위를 부여받았지만 1802년까지만 해도 실질적으로 비야에 해당되지는 않았다. 1850년에는 '무이 레알' (Muy Leal)이란 칭호를 부여받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레시보의 여러 지역이 개별 지자체로 떨어져 나갔는데 마나티, 바르셀로네타, 플로리다, 우투아도, 하유바, 아티요, 카무이, 케브라디야스, 이사벨라 등이 있다. 1982년에는 시 등급으로 격상되었지만 옛 칭호도 애정어린 표현으로서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