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남 (Republic of Suriname)
수리남의 국기 |
최초로 수리남을 탐험한 것은 스페인 이었다. 그들은 대항해 시대를 맞아 금광을 발견하기 위해 기아나 지역을 탐색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금광을 발견하지 못하고 떠났다. 가이아나 해안에 살던 원래의 거주민은 카리브 인디언이었다. 홍수림으로 뒤덮이고 인구가 희박하며 진창인 해안선 때문에 가끔 노예들의 습격을 받아도 금을 찾아 나서던 스페인인이 접근할 수가 없었다. 열대 우림지대에는 마추시, 티리오와 같은 부족이 상당히 고립된 지역에서 살기도 했다.
영국인이 1650년경에 수리남강의 서쪽 강둑에 사탕수수와 담배농장을 세우게 되며 오늘날 파라마리보라고 알려진 정착지를 건설하게 된다. 1650년대 영국인들을 필두로 네덜란드, 포르투갈,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이 이주해왔다. 이후 영란전쟁이 발발하고 기아나 지역을 둘러싸고 영국과 네덜란드와의 영유권 분쟁이 불붙었으나 1667년 브레다 조약을 통해 기아나 지역은 네덜란드령으로 인정받았다. 농장을 확장하기 위해 네덜란드인은 서부 아프리카의 노예를 수입하게 된다. 18세기 중반부터 탈출한 노예들이 내륙에 마룬인이 정착지를 형성하게 되고 많은 아프리카의 관습을 갖게 된다. 산업 혁명으로, 노예제도가 폐지되었다. 네덜란드는 수리남 지역의 영유권을 인정받고 이곳을 네덜란드령 기아나로 삼았다. 이후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네덜란드의 행정력이 약화된 틈을 타 영국이 잠시 네덜란드령 기아나를 지배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1954년 네덜란드는 수리남의 외교, 국방을 장악한 상태에서 네덜란드령 기아나를 네덜란드 왕국 헌장에 따른 네덜란드 왕국의 구성국인 수리남으로 승격시키면서, 식민지로서의 네덜란드령 기아나는 종결되었다. 1975년 11월 25일을 기해 수리남은 독립 국가가 되었다.
통화 / 언어
ISO | 통화 | 상징 | 유효숫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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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D | 수리남 달러 (Surinamese dollar) | $ | 2 |